수의사회와 나

안동 구제역의 교훈, 다시는 이런 실수는 하지말자.

허주형 2011. 2. 23. 17:51

경북의 수의사선생님이 올린글이다. 구제역 현장에서 느낀점인데, 정부방역의 무능력, 기자, 행정관청의 무대응 한마디로 졸속을 드러낸다.

 

안동 구제역의 교훈, 다시는 이런 실수는 하지말자.
조규해 (경북) 2011.02.23  17:26:45 7

안동 구제역의 復碁.  이런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말자.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이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듣고 느낀 것입니다.   

11월 29일 정오경 이곳 양돈단지에서 구제역이 터졌다는 발표를 듣고 회원들이 모임을 가지니 원장 한분이 오늘 아침 한우 한마리가 의심이 되어 9시에 경북가축위생시험소 북부지소에 신고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검역원의 최초발표가 돼지 두 농가 한우 한 농가로 된다.  검역원은 28일 그 양돈농가의 신고로 이미 안동에 와있었다. 

살처분 첫날에는 축주의 저항, 언론의 취재, 높은 사람 현장방문 그야말로 난장판 이었다.
며칠후 한명이 초소에서 순직하고 한명이 중상을 입는 사태가 일어나고 가까운 영주와 영덕에서도 발병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하루일과는 아침7시에 일어나서 8시에 현장에 도착하면 평가 임신감정, 살처분, 채혈, 매몰이 끝나면 목욕 후 9-10시쯤 귀가, 자정을 넘길 때도 있었고, TV뉴스는 목욕탕 라운지에서 가끔씩 보게 되며 그곳에서 동료수의사들과 소식도 주고받게 된다. 
살처분 도중에 역학조사용 채혈이 100두 중 16두 채혈  그 이하 농가는 전 두수 실시된다.
이 채혈지시는 시작은 있었으나 그만하라는 지시도 없이 계속되다가 흐지부지 끝났다. 
그 난리 중에 한 채혈의 반은 헛일 한 것 같다. 

감염지역이 확대 되니 처음 7개팀으로 시작한 팀이 30개 이상 되었고 외부에서 수의사 들이 지원 왔다. 객지에서 와서 고생한 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막일 하는 지원팀을 제외하고는 도움 되지 않았다. 한가지예로 평가반을 지원하려 온이는 목우촌에서 근무하는 소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상경계출신이 와서 추운데 떨다가 고생만 하고 떠나가고 살처분 지원 온 어떤 수의사는 소를 일일이 묶어야만 주사를 놓으니 능률은 고사하고 전체수의사 욕 먹이기 좋았다. 시청직원도 경험이 없으니 현장은 수의사가 주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느낀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현장방역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높은사람이 나타나면 그 밑의 졸개들도 우루루 따라오고 기자와 카메라멘 어느 누구하나 방역은 안중에 없고 자기 볼일만 보고는 가버린다. 답답해서 내가 어느 카메라기자에게 방역복 좀 입고 소독하라 했더니 나만 보고 그러느냐는 대답만 들었다.
TV에서 로고 찍힌 옷을 입은 기자는 봤어도 방역복 입고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임상수의사는 살처분 현장이나 양성우와 접촉하면 14일간 진료와 농가방문과 외부이동이 금지되는 지침이 있다. 다음의 경우에는 이 지침이 적용 되는지 안 되는지 묻고 싶다.
아무런 소독도 복장도 갖추지 않고 현장을 방문한 높은 사람들과 기자, 카메라멘. 
복장을 하고 역학조사하려 현장을 다닌 검역원 직원과 가축위생시험소 직원들과 차량.
매몰과 살처분을 지원하려 각지에서 온 지원인력과차 포크레인, 덤프트럭 장비와 기사들.
살처분 현장에서 같이 일하다가 도청에 고유 업무 때문에 출장 간 시청직원.  
농장에서 일하다가 구제역이 터지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외국인 근로자는?
물론 소독하고 다닌다고 하지만 임상수의사보다 철저히 소독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도 14일간 외부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침은 지켜지는가?. 
얼마나 많은 확산이 있었는지 추측할 수가 없다. 그들 차량 발판 바닥에 담겨서 멀리멀리 퍼져나가는데도 나는 목욕할 때 콧구멍 ,귓구멍 까지도 씻어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구제역이 안동 밖으로 나간 것이다.
검역원이 최초 양돈농가에서 돈분 차량이 파주로 두 번 간 일이 있는 것을 파주에서 발병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구제역은 안동에서 끝날 일이었다. 
본인에게 검역원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 사흘간 역학조사라며 물어왔다 
성실히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역학조사 매뉴얼은 있는지 묻고 싶다.

살처분 반경 500m 는 고려 해봐야할 사항입니다. 양성우 농장에서 능선너머 500m 반경에 걸리는 큰 농장은 매몰되고 조금 떨어진 소규모 농가는 살아난 것을 보면 지형여건에 따라 너무 매뉴얼에만 매이지 말고 융통성을 보이는 것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다 큰 소를 죽일 때는 나는 속으로 “며칠 더 살아 설에 도축장 까지 차에 실려 가서 죽어 가죽이 벗겨지고 살과 뼈가 발겨져서 죽느니 차라리 내손에 죽어 동료와 함께 살던 이곳에서 죽어 묻히어라” 라고 속으로 말하지만 어린 새끼를 죽일 때는 차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농가는 죽이는 날 분만중 이었습니다. 
40년 소만 쳐다보고 살다보니 소의 눈을 보면 공포에 질린 눈인지 호기심에 찬 눈인지 보입니다. 매몰지에서 소가 구덩이에서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일이 일어났다. 포크레인 삽을 타고 내려가서 수십마리가 이미 죽어있는 매몰지 바닥에서 그놈은 달아나고 나는 죽이려 시체를 타 넘으며 따라갈 때 피거품을 물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뒤돌아보는 그 황소의 눈을 지금도 지울수 없다. 

지금은 침출수 문제로 시끄럽다.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는 당신만큼 몰라서 그렇게 된 건지 되묻고 쉽다. 구제역 매몰지에 탄저균 운운하는 관동대학교의 교수나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도대체 저놈들 가르친 선생이 누군지 알고 싶다. 

한 달간 점심 저녁을 도시락 먹고 나니 나는 안동에 사는 한 그 도시락은 안 먹을 것이다.
10년전에  겨우 고친 위장병이 재발했다. 공무원들 진짜 생고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