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수의사회

멀쩡한 유기견 ‘내 손으로…’ 죄책감 안고 사는 수의사들

허주형 2021. 5. 6. 10:31

멀쩡한 유기견 ‘내 손으로…’ 죄책감 안고 사는 수의사들

도내 동물보호센터 20곳 달하지만 유기 행위 늘어나 수용 능력 한계
매년 6000~7000마리 안락사 실정 고통은 직원 몫… 심리지원 ‘전무’

"심한 경우 ‘개 백정’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때도 있습니다."

경기도내 한 동물보호센터에서 수년간 근무 중인 수의사 A씨는 안락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차오른다. 열정적으로 동물 치료에 매진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안락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수의사들이 동물보호센터로 오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바로 안락사"라고 말했다.

그가 근무 중인 동물보호센터는 최대 200여 마리의 유기견을 수용할 수 있으며, 지역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유기동물의 분양을 돕거나 기증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기견들이 센터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돕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공고 10일 이후 유기동물들이 안락사 대상에 포함되지만, A씨가 처음 일할 당시에는 안락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갈수록 유기동물 수가 늘어나면서 센터의 수용 능력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센터 내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매년 60여 마리에서 최대 100여 마리의 안락사를 진행하게 됐지만, A씨는 보호하던 동물을 제 손으로 보냈다는 자책감과 함께 사회적 비난 의식을 떠안고 있는 처지다.

A씨는 "안락사의 개념은 더 이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시행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개념이 바뀌었다"며 "멀쩡한 아이를 안락사하다 보면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로서의 회의감과 심적으로 허탈해지는 허무함 두 가지 갈등이 찾아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력이 되는 한 최대 1년까지 데리고 있던 아이도 있었지만, 결국 안락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아이들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고통도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도내 20여 개에 달하는 동물보호센터의 관리 여력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진행하고 있는 수의사에 대한 정부의 심리 지원 등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5일 경기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안락사된 유기동물은 매년 6천∼7천 마리씩 총 2만600여 마리에 달한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안락사는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지만 수의사들의 심적 고통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살처분이나 안락사 등에 투입되는 수의사를 위한 적극적인 심리치료 매뉴얼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안락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수의사들의 트라우마와 고통에 대한 상황은 인지하고 있다"며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현장 상황 파악 및 사회적 합의 등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종현 기자 qwg@kiho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