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처방전제(껍데기는 가라)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동행] 가족을 잃었는데 '최선 다했다'면 끝?..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

허주형 2017. 2. 14. 10:45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동행] 가족을 잃었는데 '최선 다했다'면 끝?..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 

      
(3부) 반려동물 제도 보완 시급 8.현행법상 의료사고 과실 입증 불가능
민사소송밖에 못하는 상황
내과적 손상은 과실 입증 힘든데 의무기록 제출 의무도 없어
의료사고분쟁위원회 같은 과실 조정할 전문기구 마련을
반려동물 관련 법 분리도 필요.. 가축과 함께 묶여 법 적용 한계


#. 서울에 사는 김모씨(52.여)는 갓난 새끼 때부터 키워온 반려묘 '나비'를 최근 잃었다. 나비가 혈뇨를 보여 동물병원을 찾았고 수의사의 진단에 따라 요도 확장 수술을 했다. 하지만 나비는 수술 후에도 혈뇨가 그치지 않았고 되레 적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병원에서는 수혈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빈혈로 인한 심장마비로 나비는 죽고 말았다. 동물병원 측은 "나비가 극심한 입원 스트레스로 밥을 먹지 않았고 이 때문에 방광출혈이 일어났다"고 했다. 병원 측은 "최선을 다했다"며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물병원측의 오진이나 잘못된 치료 등으로 인한 의료사고로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잃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반려인과 수의사 또는 동물병원 간 크고작은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1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동물병원 진료등과 관련해 '1372상담센터'에 접수된 소비자상담 건수는 2014년 3956건, 2015년 3388건, 2016년 2952건 등으로 최근 3연간 연평균 3400여건에 달한다. 하지만 피해구제로 이어진 건수는 2014년 179건, 2015년 150건, 2016년 166건 등으로 0.5%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진료 등과 관련한 분쟁에서 반려인들이 거의 배상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동물병원 관련 상담 건수는 과거에는 분양(입양)관련 민원이 많았지만 최근들어서는 의료사고 관련 상담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의료사고 발생해도 배상 거의 못받아

제왕절개 등 간단한 수술 중 병원에서 다른 병에 감염되거나 오진 등 명백한 과실이 인정될 경우는 제대로 배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법정 다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외과적 손상에 대해서는 손해보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내과 부분에서는 의료과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상 의료사고에서는 피해자 진술이 가장 중요한데 말 못하는 동물의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건 '사람'보다 더 힘들다. 더구나 현행법상 동물이 '물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람의 의료사고와 달리 형사처분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의료과실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오진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외에는 처벌규정이 없다"면서 "현행법상 치료비와 장례비용 외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한 위자료 등은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의료사고가 의심될 때 동물반려인들은 동물병원의 진료기록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 수의사법에는 의료행위가 기록된 '의무기록'을 제출할 의무가 없다. 소송을 하지 않는 한 수의사들은 이를 근거로 보호자에게 의무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국장은 "협회에서도 의료사고와 관련한 민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현행법상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분쟁 전문조정기구 등 제도보완 시급"

이처럼 반려동물의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들을 위한 보호장치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따라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보호하고 수의사의 책임 있는 진료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법적 장치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동물병원의 의료사고 발생 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람의 경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분쟁을 조정한다. 하지만 수의사 오진 등 진료행위를 객관적으로 감정하거나 과실을 조정할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사고분쟁위원회 등 수의사의 진료행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과실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주형 한국동물병원협회 회장은 "진료 과실 등이 명확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면 보호자와 동물병원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와 기구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현행법에서 반려동물 관련 법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에서는 반려동물과 산업동물(가축)이 함께 포함돼 있어 반려동물에 대한 법 적용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가축의 경우 개체치료를 하지 않지만 반려동물은 개체치료를 하기 때문에 현행법상으로는 관리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면서 "의료는 물론, 사료 등 반려동물 분야에 초점을 맞춘 별도의 법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