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으로~~

2016, 7. 일본 오사카 WJVF 참관

허주형 2016. 8. 12. 11:27

다시 근 일년만에 일본 오사카에 WJVF행사에 참가하려 간다, 

아침일찍 한국에서 떠나기 때문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갔다  

공항내에서 월남국수를 시켜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07:55분 발 오사카 간사이공항행 아시아나 OZ112편 비행기를 타고 간다



하늘에서 바라본 아시아나 날개의 색동모양의 날개깃



아침식사로 나온 기내식



생각보다 맛이 없어 그대로 덮었다.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환영한다는 간사이공항,



간사이공항에서 1일 패스권을 구입하여 뉴오타니호텔로 갔다


잠시 호텔에서 나와 오사카성앞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구경하였다







내방을 청소하는 분과 메니저이름,


오사카의 라멘집

내방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현수각



WJVF개회식



일부로 나를 만나러 온 시구코현 다카마쯔시 컨벤션뷰로릐 구보히로미선생


히비 일본여자수의사선생




일본수의사들과 함께

같이 술도먹었는데 이름은 잊었고 일본여자 수의사선생

짬을 내어 다시 오사카성으로 구경을 갔다,







난바에서 간사이공항까지 가는 직행열차



잘몰라 일본안내원한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오사카 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사카 성의 전경

오사카 성 (일본어: 大坂城,大阪城 (おおざかじょう,おおさかじょう))은 셋쓰 국 히가시나리 군 오사카에 있었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조 (金城) 혹은 긴조 (錦城)로, 과거에는 오사카(大坂)가 근대에 와서 오사카(大阪)로 표기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오사카(大阪)라고 많이 표기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오자카라고 읽었지만, 현재에는 오사카로 많이 읽혀진다. 도요토미 정권의 본성으로 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서 소실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에도 시대에 재건을 해 에도 막부의 서일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오사카 시 주오 구오사카조 공원 (大阪城公園)이다.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중 하나이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편집]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

도요토미 가문의 천수
오사카 여름의진도 병풍〉

1583년 센고쿠 시대 이시야마 혼간지와 그 절안에 위치한 마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을 개시했다.

완성에 1 소요된 혼마루는 이시야마 혼간지터에 조성되었고, 천수는 옛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외관은 5층5계이다. 그리고, 기와등에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했다. 히데요시의 임종이 있기까지 니노마루, 산노마루에는 소가마에[1]를 건설해 3중의 해자와 운하가 있는 견실한 성으로 완성되었다. 한창 오사카 성을 축성할 때 히데요시를 방문한 오토모 소린이 성 주위를 둘러보고는〈오사카 성은 삼국[2].무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축성자로 있는 히데요시 자신은 교토주라쿠 다이, 후시미 성을 차례차례 축성하고, 오사카보다는 주로 교토에 머물렀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1599년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후시미 성에서 오사카 성의 혼마루로 이주한다. 또, 정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고다이로(五大老)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오사카 성의 니노마루로 옮겨와 정무를 보아온다.

에도 시대[편집]

1603년 에도 막부가 성립된 후에도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에 머물면서 셋쓰를 지배했고, 1614년 오사카 성 겨울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이끄는 군의 공격을 물리친다. 그리고, 소마에와 산노마루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지만, 조건에 없는 니노마루의 외측 해자까지 메우게 되었다. 오사카 성은 내측 해자와 혼마루만 남는 벌거벗은 성이 되어 버렸다. 히데요리는 매워진 외측 해자를 다시 만들었기 때문에 강화는 파기되어 겨울전투로부터 4개월 후 1615년 오사카 여름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때 혼마루는 소실되고, 도요토미 가문은 멸문되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

소실전의 망루

재만 남은 오사카 성은 당초에 이에야스의 외손인 마쓰다이라 다다아키라에게 주었지만, 1619년 막부의 직할령으로 편입되었고, 1620년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성이 재건되어 1629년 완성되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의 성벽과 해자를 파괴하고, 전체에 흙을 돋우어 그 위에 높은 석벽을 쌓아, 옛 도요토미씨의 오사카 성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은 예전의 도요토미 가문의 성곽의 넓이에 1/4에 불과 했지만, 성의 상징인 천수는 크기와 높이면에서 기존의 도요토미씨 천수를 능가했고, 그 구조도 달랐다. 하지만, 외관은 5층으로 같다. 아마 이렇게 지어진 것은 옛 도요토미씨의 기억을 지우고 도쿠가와씨의 위세를 전국에 알리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막부 직할 성으로 있는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의 성주는 도쿠가와 막부가의 역대 쇼군이었고, 다이신[3]에서 선출해 오사카 성 조다이[4]위탁했다. 또, 다이신보다 낮은 직급의 쇼신중에 6명을 선출해 2명은 오사카 조반과 오사카 가반을 두어 성을 경비했다. 에도 시대 여러번의 화재로 손상을 입어 수리를 했지만, 1665년 낙뢰로 인해 천수가 소실되었고, 그 후 천수의 복원은 없었다.


1868년 도바 후시미 전투 후, 막부군은 오사카 성으로 패주했다.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배로 에도로 도망갔고, 오사카 성은 신정부군에 개성되었다. 하지만, 전후 혼란속에 방화가 일어나 건물의 대부분은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