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광화문]`오동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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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나 한 사물이 지속적으로 같은 상태에 머물게 될 때 발생하는 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속설들이 있다. 이 중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도, 경험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컴퓨터를 오래하면?' 전자파를 많이 받게 돼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공회전을 오래하면?' 엔진에 부하가 많이 걸려 엔진오일 교환주기가 빨라진다. '반신욕을 오래하면?' 습진이 생기거나 몸에 힘이 빠진다 등등….
공직사회에도 이런 류의 속설이 여럿 있다. 우스개소리 같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장관이 오래가면? 직원들이 피곤하다‘ 이다.
박근혜 정부들어 최장수 장관으로 꼽히는 한 사람이 바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올해 만 60세. 환갑을 맞은 그를 주변에서는 '대통령 임기 5년을 함께 할 사람'이라며 ‘오동필’이라 부른다.
이 장관의 재임 기록은 연일 갱신 중이다. 역대 농식품부장관 중 최고다. 국민의 정부 때 ‘장수장관’으로 통했던 김성훈 전 장관(50대, 2년5개월)은 물론 박홍수 전 장관(55대, 2년8개월)의 최장수 기록도 깨진 지 오래다. 이런 기세라면 정말 '오동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에 장관이 해야 할 역할로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우리 농업·농촌이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찾고, 가야 할 때와 멈출 때를 아는 신호등처럼 질서를 확립하며, 경기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치어리더처럼 지친 정책고객들과 동료를 격려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최근 농식품부가 펴낸 현장 에세이 '이동필의 일이삼사(1234)'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그는 취임 이후 '한 달에(1), 두 번(2) 이상 현장을 찾아가고, 세 시간(3) 이상 현장에 머무르며, 사람들(4)과 함께 소통한다'는 약속을 지금도 실천중이다. 지난 해 현장방문을 위해 차로 이동한 거리만 19만6723km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외견상 승승장구하는 그의 행보와 달리 그 이면에는 어두운 현실도 적지 않다. 이 장관이 '절대 권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농식품부 내 고위 공무원 인사는 '동맥경화' 현상을 빚고 있다. 조직 내 인사가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장관 취임 시 함께 한 차관, 1급 상당수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본부가 이렇다 보니 산하기관들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박근혜 정부 초 청와대에 파견 나간 1급 공무원도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친정으로 돌아가 장·차관으로 영전하는 사이 4년째 제자리다.
"공무원들이야 장관의 농정철학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 해야지요. 그런데 솔직히 힘이 안나요. 장관을 포함해 고위직들이 모두 그대로다 보니 이젠 지겹기까지 합니다. 같은 업무가 해마다 반복되다 보니 업무지시도 새로운 게 없어요. 위에서 좀 나가줘야 남아있는 사람도 승진하고, 열심히 할 거 아닙니까"
한국농어촌공사 등 산하 공공기관의 부패는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지난 2013년 이후 수사기관에 적발된 개인비리 등으로 인사조치된 이가 파면 55명, 해임 37명에 달했다. 정직,감봉,견책 등 다른 징계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수 백여명을 넘는다. 조직내 자정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뿐더러 장관의 영(領)이 제대로 섰다면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요즘 세종관가는 4·13 총선 결과보다 그 이후 개각 가능성에 더 관심이 모아지는 모양새다. 최장수인 이동필 장관은 그 대상 맨 앞에 있다. 그가 박 대통령과 임기를 끝까지 같이 할지 장담하진 못하지만 이 말이 도움이 됐으면 싶다. 역사속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의 공통점은 부하들에게 '저 사람을 따라가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공감을 심어주는 것이었다는 말. '오동필'의 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