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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오서산 산행

허주형 2011. 11. 17. 13:47

오서산은 충남 보령시와 홍성군 일대에 길게 걸쳐 있다. 산을 오르는 길이야 모두 저마다의 형세를 간직하고 있지만,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는 보령 쪽이 조금 낫다. 정상의 억새만 보려면 6푼(分) 능선까지 차가 오르는 오서산휴양림의 명대계곡 방면을 택할 수 있겠다.



하지만 굳이 자연의 품에서 시간의 도망자를 자처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보령에서도 청라면과 청소면의 경계에 자리한 넙티고개를 권할 만하다. 청소면 성연주차장 조금 못 미친 곳에 자리한 ‘꿈의궁전’모텔이 산행 기점이다. 오서산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억새 산행길이다.

 

 

넙티고개로 향하는 오서산의 초입에 들어서면 길가의 억새가 가만히 얼굴을 내민다. 때이른 조우에 은근히 마음이 설렌다. 이따금씩 흔들리는 그 모양새가 마치 반가운 손짓인 듯 다가온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가에는 지표처럼 층층나무가 자란다. 아직 가을 색을 머금지 못한 나무는 녹음이 여전하다. 희고 노란 꽃이 성성하다

 

 

 

 

임도를 따라 한 시간 가량 오르면 방향 표시가 없는 까만 사각 기둥 이정표를 만난다. 그때부터 임도를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이다. 우측으로 난 자그마한 샛길은 정상의 숲을 향해 거침없이 파고든다. 그렇게 시루봉을 지나 또 한 시간쯤 걸었을까,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숲의 행렬은 정상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맑은 시야를 허락했다

 

 

 

눈앞을 그윽하게 채우는 건 바로 억새 무리다. 억새와 억새 사이로 길이 생겨나고, 그 길 위에 또 다른 억새가 제 몸을 뉘고 있다. 그 위로 무심한 사람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상을 지천에 둔 인간의 욕망은 길을 보채지만, 그 길을 차지하고 누워버린 억새는 좀체 산을 허락하지 않는다.

발끝에서는 자꾸만 억새가 미끄러지고 종종걸음을 쳐도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자연의 품 안에서도 도시의 습성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무에 그리 급하게 달려왔을까.


뒤를 돌아보면 푸른 물빛과 어우러진 황금빛 들녘이 풍요로우면서도 평온하다. 과욕을 벗어버리면 정상은 지척이다. 그리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억새의 풍경은 새롭게 거듭난다.

 

 

 

대나무의 북방한계선 우리나라 대나무가 최북단에서 차라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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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시작에 불과하다. 오서정에 이르기까지 오서산은 능선의 길목마다 매번 새로운 억새의 풍경을 내어놓는다. 한 굽이를 돌면 또 다른 억새 무리가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 하나하나의 풍경을 담아내기에 기억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해 질 녘의 낙조나마 가슴에 담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일이다. 황금빛 억새밭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의 일몰은 오서산이 건네는 하루의 마지막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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