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중국 샤먼, 동서부학회 참석
중국에서 수의학 행사로 유명한 중국동서부학회 챈회장 초청으로 중국 복건성 샤면으로 갔다
칼라운지에서 맥주한잔에 식사는 간단히
샤먼으로 가는 항공권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샤먼가는 대한항공 KE887항공기 소형항공기다.
KE887 내부
샤먼 바로 앞이 대만의 금문도이다. 작년 11월에 금문고량주 회사 대표 초청으로 간적이 있는데
I LOVE XIAMEN
샤먼 국제공항 택시타는곳
내가 묵었던 니코호텔.
행사 가방
행사장
개회식
내 자리
행사장에서 대만 금문도가 보인다. 작년에 저기서 여기를 봤는데''''
우리나라 회사인 BIONOTE사 중국에서는 유명하다고 한다.
드디어 중국 코카콜라
하루 짬을 내어 우리나라 티브이에서 방영되기도 한 샤먼의 구랑위를 가기로 했다.
샤먼의 여객터미널 여기서 대만 금문도에도 간다.
구량위에는 피아노 박물관도 있다.
구랑위에서 제일높은 봉우리인 일광암을 오른다.
일광암 정상에서 바라본 구량위 전경
구량위입장권
샤먼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다. 니코호텔에서, 음식은 종류가 많고 맛도 있다.
KE888 대한항공 탑승구
샤먼厦门
지구급 시로, 북쪽에 있는 퉁안 현[同安縣]도 영역 내에 포함된다. 주룽 강[九龍江] 어귀에 있는 샤먼 섬의 남서해안에 있다. '바다 위의 정원'이라는 별칭처럼 경치가 빼어난 항구로 앞바다에 있는 많은 섬들이 방파제 구실을 해준다. 이들 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귀에 있는 진먼 섬[金門島]으로 타이완의 국민정부가 장악하여 요새로 만들었다.
송·원 시대에 샤먼은 가목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주로 해적들의 소굴이었으며 밀 무역의 본거지로 이름을 날렸다. 샤먼이란 이름은 1394년 해적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취해진 조처의 하나로 이 섬을 요새화했을 때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1600년대에 샤먼은 타이완을 장악하고 있던 정성공의 통치하에 있었다. 당시 샤먼은 사명성으로 불렸다. 1680년 샤먼은 청의 군대에게 점령당했고, 그후 취안저우[泉州] 수군의 방어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외국과의 교역은 1540년 포르투갈인이 이곳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그들은 얼마 안 가 쫓겨났다. 정성공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배들이 꾸준히 찾아들었다. 그 가운데 영국 상인들은 청과의 무역장소가 광저우[廣州]로 제한된 1757년까지 때때로 샤먼을 찾아왔다. 그 이후에는 스페인의 배 몇 척만이 샤먼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1839~42년 영국과의 사이에 일어난 아편전쟁 결과 중국은 5개 항구를 개방하여 외국인의 무역과 거주를 허용했는데, 샤먼도 그중의 하나였다. 항구 내의 구랑 섬[鼓浪嶼]에 있던 조계는 조금씩 확대되어갔다.
19세기에 샤먼은 푸젠 성 동남부에서 나는 차(茶)를 수출하는 항구로 이름을 떨쳤다. 차 무역은 1870년대에 들어 절정에 달했으나 곧 쇠퇴했다. 그후 샤먼은 타이완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이 재배·생산한 타이완 차를 판매하는 중요한 시장인 동시에 이를 선적하는 항구가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샤먼을 거점으로 타이완의 개척과 정착이 이루어졌다.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한 1895년 이후에도 타이완과의 밀접한 관계가 계속되었다. 샤먼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이주하려는 중국인들이 출국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항구였다.
20세기초 차 무역이 쇠퇴한 대신 과일 및 어류 통조림과 종이·설탕·목재를 계속 수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샤먼은 자체 무역뿐만 아니라 화교들이 본국의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으로 번영을 누렸다. 1938~45년에는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다.
1949년 이후 샤먼은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1956년 섬과 본토를 잇는 둑길이 만들어졌으며, 샤먼에서 저장 성[浙江省]의 경계까지 가는 철로가 푸저우[福州]행 지선과 함께 착공되어 같은 해에 완공되었다. 1949년부터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과일 및 어류 통조림, 대구 간유, 어분, 여러 종류의 어류를 이용한 수산업, 사이잘 삼의 가공, 설탕 정제, 제혁, 연초 저장 등이 중요한 산업이다. 선박 수리와 토목업도 꽤 큰 규모이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귀국한 화교와 그 가족이 샤먼 인구의 과반수나 되었다. 1921년에 대학이 설립되었다.
구랑위(鼓浪嶼, Gulangyu Island) 또는 고랑서(혹은 고랑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샤먼시에 있는 섬이다. 섬의 면적은 2km²이고 2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샤먼섬에서 페리를 통해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샤먼은 아편전쟁 후의 1842년에 체결된 난징 조약으로 개항한 5항의 하나로, 섬에는 영사관이 두어져 서양인이 대부분 살고 있었다. 현재도 양옥이나 교회등이 존재한다. 자동차의 주행이 금지되어 있다.
식민지 시대에 섬에 중국에서 유일한 피아노 박물관이 있었기 때문에, 섬은 '피아노의 섬(鋼琴之郷)'으로 불리고 있었다. 현재는 관광의 섬으로서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