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앙사는 베트남 영토
독도를 두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주권싸움을 하는 것처럼, 베트남과 중국도 호앙사 군도를 두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호앙사군도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우연히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해 번역해보았다. 호앙사를 최초로 발견한 나라는 포루투갈과 스페인(콜롬버스가 이끄는) 상선인데,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자오선 360리그를 따라 동쪽 땅은 스페인에게, 서쪽 땅은 포루투갈에게 허용을 함으로써 두 나라의 분쟁을 조정한 역사가 있다. 호앙사가 베트남의 영토라는 증거는 서양 상선들의 항해기록에도 묘사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545년 베트남 동해를 항해하던 포루투갈 선원들 중 페르냐오 멘데스 핀토가 호앙사 군도를 자세히 묘사한 기록이 있다. 그는 호앙사를 풀로 프라셀라(Pulo Pracelar)라 불렀다. '풀로'란 포루투갈어로 '작은 섬'을 뜻하고 '프라셀라'란 '산호'를 뜻한다. 16세기 베트남 북쪽으로 향하던 서양 상선들은 산호와 부딪혀 커다란 고초를 겪게 되는데, 당시 포루투갈의 사료에 의하면 이 위험한 산호지역은 호앙사와 쯔엉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17세기 들어 포루투갈은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잃게되었고 대신 서양의 막강한 다른 세력들이 이곳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에 의해 허락받은 국제 무역회사들에 의해 교역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18세기에는 동인도회사가 이 지역을 관할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선교단과 상선에 의해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미리 보고받아 베트남에 대해 매우 소상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1701년, 중국으로 향하던 프랑스 상선의 한 일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파라셀은 안남공화국의 군도다. 몇 백 마일이나 길게 늘어선 산호들 때문에 수많은 배들이 좌초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호앙사, 쯔엉사 군도는 산호로 들러싸여 있는, 쓸모없는 섬들처럼 보이지만, 풍부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고, 가스와 오일 매장량이 커서 중국은 호시탐탐 이 곳을 가로채려 하고, 베트남은 기를 쓰고 이곳을 사수하려 한다.
A merchant ship passes through the East Sea of Vietnam - picture by John White. Hoang Sa - Truong Sa in a search for colonies
파라셀 제도
파라셀 제도(영어: Paracel Islands)는 남중국해에 떠있는 수많은 산호초의 작은 섬들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서는 서사 군도(중국어 간체: 西沙群岛, 정체: 西沙群島, 병음: Xīshā Qúndǎo), 베트남에서는 호앙사 군도(베트남어: Quần đảo Hoàng Sa/ 群島黃沙)라고 부른다. 매우 작은 섬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거주하지 못하며 섬 그 자체는 거의 가치가 없지만 광대한 배타적 경제 수역(EEZ)에 매장된 해양 자원이 중시되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였다. 프랑스가 떠난 이후에는 남베트남의 관리하에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74년 1월 19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곳을 점령했다.
현재 베트남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西沙群岛是目前南海诸岛中唯一由中国大陆完全控制的岛屿,扼守南海交通要冲,战略位置非常重要。然而由于一些现实因素,西沙群岛仍然非常神秘,最近传出西沙群岛将要开放旅游的消息,也许在不远的将来,普通民众将有机会一睹南海明珠的秀美芳容。编辑:陈若冰
西沙群岛,由永乐群岛和宣德群岛组成,是南海四大群岛之一。永乐岛、宣德岛为纪念明朝永乐、宣德年间郑和下西洋时在南海诸岛的活动。
西沙群岛自古就是中国领土,是海上丝绸之路的必经地。2007年,由国家博物馆和海南省文体厅共同承担的西沙水下考古项目,历经55天,出土近万件文物,瓷器占绝大部分,产地主要为福建和江西景德镇
1974年,广东省考古工作者和守岛战士在西沙甘泉岛上发掘的唐、宋遗址(左图)以及在西沙群岛发现的中国古代铜钱和瓷器(右图)。大量的考古和文物遗迹表明中国人自唐以来就开始在西沙群岛生活,是当时西南中沙群岛的主人
近代,由于中国国力衰弱,西沙群岛先后被法国和日本占据。图为西沙群岛永兴岛,日本炮楼遗址。(2010年拍摄)
抗战胜利后,中国政府根据《开罗宣言》和《波茨坦公告》,正式收复西沙群岛和南沙群岛。1946年秋,中国政府派出“太平”、“永兴”、“中建”、“中业”四舰前往南海接收。同年11月,由姚汝钰和张君然率领的“永兴”、“中建”两舰抵达西沙群岛的主岛——永兴岛,在岛上竖起“海军收复西沙群岛纪念碑”,碑的正面刻“南海屏藩”四个大字,并鸣炮升旗,以示接收西沙群岛工作完成。
1950年代,南越政府占领了西沙群岛部分岛屿,中国与南越在西沙对峙了10多年。1974年1月,南越当局趁中国正值文革内乱,在西沙挑起战端,双方爆发西沙海战。幸运的是,仓促应战的中国军民从南越手中夺回了被占岛礁,完全控制了整个西沙群岛。图为西沙永兴岛军史馆里展出的越南军队的头盔。
西沙海战功勋舰,396编队的389舰,摄于1990年大连旅顺港。西沙海战中,389舰重创后抢滩成功,海战后调入北海舰队直至退役,1990年于大连旅顺港供游客参观,改漆舰名“金州舰”。1993年拖至丹东展览半年,后又拖至营口展览;1995年初回大连旅顺港,当年被拆解。
军报记者伍振超1974年拍摄的《西沙民兵》,主人公是西沙群岛金银岛的民兵班长吴先锋。1974年1月,吴先锋带领岛上民兵击溃登岛的南越军人,毙敌10余人。吴先锋的英雄事迹,成为海战之后的宣传典型。当时新华社发了通稿,国内外许多报刊都用这张照片作为封面。吴先锋随之成为全国家喻户晓的人物,连任是第四、五届全国人大常委、六届全国人大列席代表等。
2011年11月,吴先锋在家中接受记者采访。这位当年的英雄人物,却因为无力负担昂贵的医药费,在海口市的一家汽车卖场帮人看店,每月赚取2000元补贴药费。
西沙海战烈士陵园建于1975年,坐落在三亚市红沙镇欧家园。西沙海战中,南海舰队共有18名军人壮烈牺牲。现在,陵园四周被新开发的地产项目包围。
1974年西沙海战之后,中国获得了对整个西沙群岛及其周边海域的控制权。图为1974年,海军在南海进行军事演练。
1985年4月,西沙群岛驻军举行防空演习。
永兴岛位于西沙群岛的宣德群岛,是西沙群岛及南海诸岛中最大的岛屿,面积2.1平方公里。永兴岛是海南省人民政府派出县级机构西南中沙群岛办事处驻地,岛上有政府大楼、银行、邮政、商店、机场等。其中永兴岛机场1991年建成,拥有一条2400米的混凝土跑道,可起降战斗机与波音737。1974年西沙海战时,当时中国最先进的歼7战机只能在西沙群岛停留几分钟。永兴岛也因此被誉为中国在南海不沉的航空母舰。
2005年11月20日,海军南海舰队首批驻西沙群岛女兵退伍,乘上换班专机返乡。目前永兴岛还没有开通民航班机,普通游客前往永兴岛必须乘坐渡轮,从海南岛出发,要12个小时的航程才能到达。
2000年,停泊西沙群岛某海岛的海军潜艇。
2010年,西沙群岛石岛上的军事设施。石岛与永兴岛在同一个礁坪上,相距1130米,最高处15.9米,是南海诸岛中最高的岛屿。
2010年3月,西沙永兴岛港口停泊的海军舰船,永兴岛码头可停靠5000吨位的船只。
琼沙号系列补给船是航行于海南文昌清澜港与永兴岛之间的一艘政府公务船,每隔20天左右往返于海南岛和永兴岛一次,他们的主要任务是运送西沙驻岛干部职工和部队官兵上下岛及补给生活物资,因而它被西沙军民视为“生命船”。琼沙号系列补给船先后经历了1号舰、2号舰、3号舰。
永兴岛上热带植物茂盛,林木遍布。为了把西沙建成绿色明珠,驻岛官兵们不仅从祖国大陆运来好的土壤,栽种了数以万计的椰子树、木麻黄、野枇杷等,许多人还把家乡的树种、树苗带到岛上。目前,西沙的绿化面积已达到90%以上。图为永兴岛上的“将军林”,这是党和国家领导人以及100多位将军先后栽种的,每一棵上刻着栽种者的名字。
永兴岛的椰子树从无到有,至1997年3月,仅“将军林”中的椰子树达206棵。图为已故中共中央总书记胡耀邦1986年1月来西沙亲手种下的椰子树。
驻守石岛的官兵为刚栽种的椰树苗垒起防风墙。(2003年1月拍摄)
西沙战士正在收获椰子,现在岛上产的椰果都吃不完。平时,很少有人喝开水,大家都用椰子汁解渴。(2003年1月拍摄)
2010年9月,西沙群岛珊瑚岛上林木郁郁葱葱。据统计,西沙群岛栖息的鸟类有6万多只,40多种。
2011年6月,渔民在珊瑚礁盘上作业。西沙群岛海域海水清澈、洁净透明,最深能见度达到40米,在光影的映衬下,海水五光十色,变幻莫测,犹如仙境。
2010年3月,西沙群岛赵述岛,简陋的渔家房子,这里现在设有村民委员会。
2010年3月,西沙群岛赵述岛,渔家棚屋外晾晒的水产。
2010年3月,西沙群岛赵述岛,渔民吃着纯天然无污染的海鲜。
2010年3月,西沙群岛永兴岛海滨的游客。西沙群岛由于没有任何污染,因而是游泳和垂钓的理想场所。根据国际“先入为主”的国际法规则,早日将西沙群岛开发将更有益于宣告主权的所属,希望在不久的将来,普通民众能登上祖国的宝岛。 (본 내용은 중국신문에서 발췌했음)
Paracel Islands (서사군도) 전쟁1974년 일어난 베트남과 중국 사이의 전쟁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aracel_Islands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the_Paracel_Islands
월남전과 대미 관계 때문에 여력이 없던 베트남을 중공이 쳤죠. (1979년 등소평이 월남을 친 중월전쟁하고는 또 다릅니다) 파라셀 제도는 중국 해남도의 아래, 베트남 연안 동쪽에 있는 군도입니다.
중국이 74년 무력 점령해 버린 뒤로 베트남은 끊임없이 이의 제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70년대 후반들어 중국은 서사군도의 서남쪽, 남사군도에서도 군사분쟁을 일으켜 베트남군을 공격했습니다.
중국이 엄한 짓을 할 때 초기에 제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잘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동북공정이 왜 우리에게 위험한 지 잘 알 수 있는 사례기도 하죠.
그리고, 바쁜 와중에 뒤통수치는 건 꼭 일본을 닮아서 우리도 독도를 잘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하고요.
애초에 서사군도를 베트남이 많은 희생을 내서라도 지켰다면, 중국이 남사군도를 집적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일단 힘으로 점령하고 지배 논리야 만들어내면 그만이란 중국 오랑캐다운 야만적인 일처리를 잘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중꿔들은 현재 이어도를 잡아 먹으려고 심심하면 들락거리고 있다고 하죠. 우리가 힘이 약해지면 가거도까지 밀고 들어올 녀석들입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European merchant ships in Hoi An in the 17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