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유 있는 경고, 항생제의 역습
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푸른곰팡이 근처에서 세균이 자라지 않는 걸 보고,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개발했다. 이 '영웅 곰팡이'는 탁월한 살균력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폐렴에 걸린 처칠의 생명을 구해 연합국 승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인류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의 개발은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됐다. 수백 종의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수많은 감염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항생제를 잘못 쓰거나 남용할 경우 치명적인 내성균을 만든다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더 나아가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MDR)', 즉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인류 전체의 건강을 위협한다. 한국은 항생제 사용량이 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으로 항생제 내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항생제 줄이려 의료시스템 개선 나선 호주
호주는 국가 차원에서 항생제 내성 확산을 늦추기 위해 적극적인 의료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멜버른에 위치한 1차 병원 'Primary medical & Dental Centre Highett'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의사 브루스 씨는 한국과 호주 병원 진료의 큰 차이점으로 '진료시간'을 꼽는다. 호주 병원에서는 환자의 증상 원인과 경과를 세세히 점검하기 위해 어떤 환자든 최소 15분에서 최장 40분 가량 진료를 본다. 이러한 진료 방침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한다.
항생제, 살기 위해 줄여야 한다!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은 항생제를 비롯해 약 처방을 줄이려 노력한다. 박지영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작은 질병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한국의 의료 환경에 문제를 느꼈다. 박 전문의는 감기 환자에게 약 처방전 대신 충분한 수면과 부족한 영양 보충, 따뜻한 물 마시기 등 생활규칙이 담긴 '생활처방전'을 준다. 약 처방 대신 질병을 이겨내는 생활 습관으로 면역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설명이다.
항생제 처방을 줄이기 위해선 의료계와 의약계, 소비자 모두에게 교육이 필요하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배현주 교수는 "항생제를 많이 사용할수록 추후 천식이나 아토피, 알레르기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해외 역학 자료에서 증명됐다"며 "의료계 중심으로 항생제를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헬스(One-Health), 사람-동물-환경은 하나!
사람이 먹는 항생제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항생제가 사용되는 곳이 있다. 바로 축산 분야다. 좁은 우리에 가둬 밀집 사육하는 축산업계에선 질병 치료와 생장촉진을 이유로 대량의 항생제를 사용해 왔다. 이에 2003년 수의학회에서는 '사람, 동물, 환경의 건강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돼있다'는 원헬스(One-Health) 개념이 등장했다. 항생제 내성의 발생과 전파를 통제하려면 사람-동물-환경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원 헬스(One Health)'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성균은 사람, 농·축·수산, 식품, 환경 등 다양한 경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 관리도 원헬스 관점에서 의료보건, 축산, 환경 분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